햄버거에서 사라진 양상추, 식탁 위로 번진 기후 위기
“이상 기온에 따른 양상추 물량 수급 불안정으로 샐러드 제품 판매를 일시 중단합니다.”
최근 샌드위치 전문 브랜드 써브웨이가 전국 주요 매장에 게시한 안내문이다. 햄버거 프랜차이즈 롯데리아 역시 햄버거에 들어가는 양상추의 양을 줄이고 양배추를 섞어서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는 올해 국내 주요 양상추 산지를 강타한 이상기후로 인해 생육이 부진해지면서 공급 부족 사태가 빚어진 탓이다. 맥도날드와 맘스터치 등 양상추 사용량이 많은 여타 외식 업체들도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본래 양상추는 봄과 가을에 수확되는 작물로 경남 하동과 의령, 전남 광양, 그리고 강원도가 주산지로 꼽힌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강원도 지역에 닥친 극심한 가뭄에 이어, 가을 초입부터 찾아온 때 이른 저온 현상과 잦은 호우가 작황을 급격히 악화시켰다. 양상추는 수분에 매우 취약한 작물이라 재배 기간 중 많은 비가 내리면 정상적인 생육이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10월과 11월은 국산 양상추 수급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시기였으나 올해는 유례없는 상황”이라며 “수분에 민감한 특성상 선박을 통한 장거리 운송이나 중국산 물량 확보조차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가격 폭등과 ‘기후 플레이션’의 공포
공급 부족은 즉각적인 가격 폭등으로 이어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양상추 도매가격은 킬로그램당 5,029원을 기록했다. 이는 불과 보름 전인 10월 1일(2,400원) 대비 110% 이상 급등한 수치이며, 올해 초 가격인 1,592원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뛴 가격이다.
유통업계 전반에서는 기후 변화로 인한 공급망 불안정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이미 올해 초 브라질과 베트남 등 주요 커피 산지의 가뭄과 홍수로 원두 가격이 치솟으며 커피 프랜차이즈들의 도미노 가격 인상을 불러왔고, 여름철 폭염은 젖소의 원유 생산량을 떨어뜨려 우유와 생크림 부족 사태를 야기했다. 바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수온 상승으로 인해 국민 횟감인 광어와 우럭 가격이 전년 대비 각각 14%, 42%나 급등했다. 기업들은 이제 특정 산지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생산지를 다변화하거나 농산물의 신선도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저장 설비를 확충하는 등 생존을 위한 대안 찾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생산 효율화로 위기 돌파, 영국 케인스 푸드의 사례
원물 수급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가공 공정의 고도화를 통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의 케인스 푸드(Kanes Foods)는 최근 독일의 식품 기계 전문 기업 크로넨(Kronen GmbH)과의 협업을 통해 아이스버그 양상추(양상추의 일종) 가공 라인을 전면 개편했다. 이는 기존 설비와 최신 기술을 결합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폐기율을 줄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오랫동안 크로넨의 세척 및 건조 장비를 사용해 온 케인스 푸드는 구형 기계와 신기술을 통합하여 아이스버그 양상추 및 기타 엽채류 처리에 최적화된 연속 공정 라인을 구축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현장 실사부터 라인 설계까지 생산 시설의 작업 흐름에 맞춰 정밀하게 기획되었다.
첨단 자동화 설비 도입과 성과
새로 구축된 라인은 작업 효율성에 초점을 맞췄다. 6인용 트리밍 테이블을 작업장 바닥 조건에 맞춰 개조해 원물이 절단기로 원활하게 이동하도록 설계했으며, 기존의 계량 벨트는 경사형 컨베이어로 재구성해 연속 작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여기에 미세 입자 제거 시스템과 물 재활용 기능을 갖춘 신형 세척기 ‘GEWA 4000 B PLUS’를 추가 도입하여 세척 효율을 높였다. 특히 이 세척기는 곤충 제거 드럼과 열교환기에 맞춘 순환 파이프 시스템을 탑재해 위생과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잡았다.
건조 공정 또한 강화되었다. 세척된 양상추는 건조 시스템의 버퍼 벨트로 바로 이동하며, 건조 후에는 개조된 슬라이드를 통해 상자로 즉시 포장되는 구조를 갖췄다. 이러한 일련의 공정 개선을 통해 케인스 푸드는 시간당 최대 1,400kg의 양상추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다. 케인스 푸드의 프로젝트 담당자는 “크로넨 및 영국 파트너사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복잡한 라인 통합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전했다. 이 새로운 가공 라인은 초여름부터 본격 가동되어 현재 샐러드 볼 제품 생산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기후 위기로 인한 원물 수급난 속에서, 이러한 생산 공정의 기술적 혁신은 식품 기업들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또 다른 필수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