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유럽 최대 전기차 배터리 기업, 아시아 경쟁에 밀려 구조조정… 유럽 전기차 산업의 위기

전기차가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배터리 시장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지만, 유럽은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 산업에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한 상황입니다. 한국, 중국, 일본 기업들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는 가운데, 유럽 최대의 배터리 제조사조차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유럽 배터리 산업의 취약성이 한층 더 드러나고 있습니다. 과거 전통적인 자동차 강국이었던 유럽이 미래형 자동차 산업에서 아시아에 뒤처지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유럽 최대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인 스웨덴의 노스볼트(Northvolt)는 지난 8일 자회사 노스볼트Ett에 대해 파산 신청을 하며, 배터리 생산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을 이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노스볼트는 지난달에도 전체 직원의 20%에 해당하는 1,600명을 감원하고, 셸레프테오 지역의 노스볼트Ett 공장 확장 계획을 전면 중단하기로 발표했습니다. 제조, 개발, 재활용을 모두 아우르는 ‘올인원’ 배터리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공격적인 확장을 추진해온 노스볼트는 최근 생산 지연과 같은 문제로 독일 BMW와 체결한 20억 유로(약 3조 원)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이 취소되면서 경영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독일 폴크스바겐도 노스볼트와의 협력을 재검토하기 시작하면서 유럽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형국입니다.

노스볼트의 어려움은 유럽 전기차 배터리 산업 전반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때 유럽 전기차 배터리의 ‘희망’으로 여겨졌던 노스볼트는 설립 초기 독일의 BMW와 폴크스바겐 같은 대형 완성차 업체들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이들 업체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파트너로 자리 잡았습니다. 금융 분야에서도 골드만 삭스와 블랙록 같은 글로벌 투자 거물들이 자금을 투입하며 노스볼트의 성장을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의 기술적, 생산적 경쟁력에 밀리면서 유럽 배터리 업체들이 점차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배터리 전문 리서치 기관인 SNE 리서치의 보고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상위 10위권에 포함된 유럽 배터리 제조사는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시장 점유율 상위권에는 중국의 CATL과 BYD,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일본의 파나소닉 등 아시아의 주요 배터리 제조사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CATL은 전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며 시장의 중심에 서 있으며, 한국과 일본 기업들 또한 품질과 안정성을 앞세워 점유율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배터리 산업이 이처럼 뒤처지게 된 이유로는 아시아 배터리 제조사들의 대규모 생산력과 기술력, 그리고 효율성이 꼽힙니다. 한국과 중국의 배터리 업체들은 전기차에 대한 기술적 우위뿐만 아니라 대규모 생산 공장을 기반으로 높은 생산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기차 배터리의 대량 생산과 가격 경쟁력에서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는 중소형 전기차 업체들에게도 경제적인 선택지를 제공합니다. 반면, 유럽 배터리 제조사들은 아직까지 생산 규모와 기술적 효율성에서 아시아 기업들과의 격차를 좁히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또한, 유럽의 환경 규제가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도 유럽 배터리 제조업체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성을 중요시하는 유럽 시장에서는 생산 과정에서의 친환경적 접근이 필수적입니다. 이에 따라 유럽 업체들은 재활용과 폐기물 처리, 친환경 소재 사용 등에서 높은 기준을 맞추어야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아시아 경쟁업체들에 비해 추가 비용을 발생시켜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럽 배터리 업계가 아시아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기술 개발과 생산 효율성 증대가 필수적입니다. 유럽 연합(EU) 차원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논의하고 있으나, 단기간에 아시아 업체들과의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